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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PORTS -

wbc 국대 출정식에서 이강철 감독의 출사표 / 이강철 감독 소개

by 채소아빠 2023. 3. 4.

 

출사표 전문

2023 WBC 국가대표팀 감독 이강철입니다.

국가대표라는 무게, 국가대표팀이라는 명예와 자긍심, 국가대표팀 선수라는 영광, 국가대표팀 감독이라는 무한한 책임을 새삼 절감합니다.

저희들은 곧 격전의 현장으로, 국민 여러분들의 성원을 뒤로하고 떠나갑니다. 국가대표팀으로서의 명예 못지않게 승패가 갖는 무거운 책임의식 또한 함께 가져갑니다.

지난달 미국에서의 첫 소집 훈련 이후, 저희 팀은 정신적, 육체적, 기술적으로 담금질했습니다. 팀워크를 다졌습니다. 스스로를 평가하고 상대팀을 분석했습니다.

저희 팀 스스로, 무엇을 잘할 수 있는지, 무엇이 부족한지, 어떻게 하면 하나 될 수 있는지. 그리하여 승리의 영예를 국민 여러분과 함께 나눌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하였습니다. 준비하였습니다.

물론 저희들과 맞붙을 다른 팀들도 한 나라의 국가대표팀입니다. 20개국 모두 결코 만만치 않은 상대입니다. 하지만 저희들은 그 이상이 되도록, 특별한 두려움이 되도록 땀과 노력을 경주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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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의 유니폼이 갖는 엄중한 사명 의식은 저를 포함한 모든 선수들, 코칭 스태프들을 하나로 뭉치게 하였습니다. 저희들은 이런 일치감으로 그간의 염려를 넘어서서 최고의 팀이 될 것입니다.

특별히 지난 해 카타르 월드컵에서 보여준 우리 국가대표 축구팀의 투지와 선전은 저희들에게도 힘이 됩니다. 우리 국가대표 축구팀 그리고 리오넬 메시의 아르헨티나 국가대표 팀의 열정과 승부는 저희들에게 다시 한번 태극 마크의 의미를 되새겨줍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고대 로마 시대 때 카이사르의 군대가 당시 엄청난 전투력을 보유한 게르만족과의 전투를 앞두고 있을 때입니다. 잠시 주저하고 있던 병사들에게 카이사르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의 선조들은 이미 이들과 싸워서 이긴 적이 있다. 뭐가 두려운가." 결국 로마의 승리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유니폼에는 승리의 경험이 새겨져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올림픽 금메달, WBC 준우승이라는 자랑스러운 경험이 있습니다. 그리고 어떠한 경우에도 함께해 주시는 국민 여러분이 계십니다.

그간 한국 야구와 야구 국가대표팀에 보내주신 지지와 응원에 감사드립니다. 한국 야구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저희들의 노력이 아닌 온전히 국민 여러분들의 응원과 열정이었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짐합니다. 국민 여러분께 다짐합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희망과 감동을 보여드리겠습니다. 그라운드에 모든 것을 쏟아붓는 전사가 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2023 WBC 국가대표팀 감독 이강철

대한민국의 야구선수 출신 감독. 선수 시절 해태 타이거즈, 삼성 라이온즈, KIA 타이거즈의 투수로 활약했으며, 은퇴 후 코치 생활을 거쳐 2019년부터 kt wiz 감독을 맡고 있다. 2023 WBC 대한민국 대표팀의 감독을 겸임한다.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조범현과 함께 트리플 크라운 달성 감독이다. 해태 타이거즈 왕조 시절 우승을 이끌고 1996년 한국시리즈 MVP까지 받았으며, 2009년 한국시리즈에서는 타이거즈의 투수코치로 V10을 이끌었고, 선동열호/2018년에서 투수코치를 맡아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에서 우승을 견인했으며, 2021년 한국시리즈에서는 강철매직으로 kt의 첫 우승까지 이끌었다. 202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까지 우승하면 조범현과 함께 그랜드 슬램 달성 예정인 감독이다.

현재 2023시즌 기준 KBO 리그 최고령 1군 감독이다.

 

이강철 감독의 선수시절

선동열의 별명이 무등산 폭격기였다면, 이강철의 별명은 "무등산 핵잠수함"이었다. 특유의 물 흐르는 듯한 부드러운 투구폼으로 당시 한국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언더핸드 투수로 유명했다.

전성기 시절 빠르지 않은 130km/h 중후반대의 구속을 가지고 있었지만, 당시 해설자들의 단골 레퍼토리가 '이강철의 속구가 속도는 느리지만 우완 정통파 투수의 140km/h대 패스트볼 이상의 위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을 정도로 속도에 비해 위력적인 속구를 뿌렸다. 이강철의 주 무기는 떠오르는 패스트볼이었는데, 낮게 깔려서 오다가 대략 포수 머리 근처 또는 약간 높은 정도의 범위에서 형성되었다. 

당시에는 이 볼이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 제대로 들어가면 타자는 맞추기도 어려운 마구급 구질이었지만, 반대로 홈런을 맞기도 쉬웠다. 또한 언더핸드답게 공 끝의 움직임이 상당히 변화무쌍했고, 커브와 슬라이더는 당대에 상당히 높은 평가를 받았던 구질들이었다. 특히 이강철의 주 무기였던 슬라이더는 남아있는 영상을 보면 살짝 떠오르면서 우타자 바깥쪽이나 좌타자 몸 쪽으로 예리하게 휘어져 들어가는데, 이강철이 선발로 오래 기용될 수 있었던 이유도 이 슬라이더가 당시 좌타자들에게 잘 먹혀 들어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외로 언더핸드 투수들의 주무기로 많이 이용되는 싱커는 별로 안 던졌는데, 많이 맞아나가서인지 당시 배터리를 이루던 장채근과의 상의 끝에 봉인했다고 한다.# 사실 이강철의 플레이 스타일이 삼진을 잡는 데 맞춰져 있어 땅볼 유도에 효과를 보이는 싱커를 쓸 필요는 크게 없었다. 그래도 별로 안 던졌다 뿐이지 주력 구종 중 하나였는데, 주로 삼진을 잡기 힘든 선수를 처리하거나 투구 패턴에 변화를 주기 위해, 혹은 체력 소모를 막기 위해 쓰곤 했다. 

싱커 자체도 꽤나 훌륭했던지라 당시에도 최고의 싱커볼 투수로 정평이 나 있었다. 여기에 이강철은 완급조절에 있어서도 리그 수준급으로, 다른 타이거즈 에이스들에 비해 떨어지는 구위를 완급조절을 통해 커버하는 영리한 투구를 보여주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구위가 떨어지는 나이에도 선수로 뛰며 롱런할 수 있었다.



언더핸드 투수지만 땅볼을 유도하진 않았고, 슬라이더와 직구의 변화각과 완급 조절을 이용해서 삼진을 많이 잡아내던 투수이기도 했다. 언더핸드 투수 중 이닝 대비 탈삼진율이 매우 높은 게 그 증거. 그래서 선동열, 정민철, 주형광처럼 괴물 같은 탈삼진 능력을 가진 투수들이 리그를 호령하던 1990년대에도 심심찮게 탈삼진 순위에 이름을 올리던 투수였고, 타이거즈 프랜차이즈 중 최다 탈삼진 기록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통산 최다 탈삼진 기록을 갖고 있는 송진우보다 앞서 통산 최다 탈삼진 기록을 세웠다는 것은 특기할 점이다.

다만 당시 대표적 홈런 공장장 중 하나가 이강철이었데, 통산 218개의 피홈런을 맞아 통산 3위에 올라와 있다. 투고타저 시기에 주로 활동했음에도 홈런공장장이라는 별명이 있었을 정도. 하지만 언더핸드는 투구폼 특성상 배팅볼로 던져주는 각도와 비슷한 데다 구속도 다른 폼에 비해 느리다 보니 피홈런에 매우 취약하다. 이 때문에 이강철에 앞선 언더핸드 에이스였던 한희민 역시 8 시즌 동안 104 홈런을 맞아 홈런 공장장이라는 오명이 붙곤 했다. 

더군다나 유독 이강철의 피홈런은 임팩트 있는 경우가 많아 더욱 그 이미지가 지워지지 않는 편이다. 김기태와 이승엽의 프로 커리어 첫 홈런을 허용했고, 2004년 준플레이오프에서 홍성흔에게 만루홈런을 맞고 나서는 빵 사건이 일어났다. 다만 피홈런이 많은 것은 그만큼 오래 뛰고 많이 던질 기회를 받았기에 그런 측면도 있다. 실제 이강철은 통산 이닝도 2204⅔이닝으로 KBO 3위다, 간단히 말해 많이 던졌으니 그만큼 홈런 맞는 빈도수도 많았던 것이다. KBO 최다승, 최다 이닝 투수인 송진우가 최다패, 최다 피홈런 투수인 것과 비슷한 이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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