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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로벌 경제 -

세금의 역사와 이해

by 채소아빠 2022. 10.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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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의 역사와 이해

 

 

이 세상에서 죽음과 세금만큼 확실한 것은 없다.

100달러 지폐에 그려진 인물 벤저민 프랭클린이 남긴 말입니다. 

세상에서 피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죽음과 세금이라는 것이죠.

돈을 벌기 시작하면 무조건 세금과 함께해야 합니다.

이걸 왜 내는 것인지 불만을 나타내면서도 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경제학에서 세금은 여러 가지 왜곡을 낳기도 해서 최소한의 세금을 부과하라고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복지를 위해서는 세금이 꼭 필요하죠.

이런 세금은 인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예전 뉴스레터에서 전쟁과 세금이 역사의 가장 중요한 순간을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오늘부터 이 세금에 대해 한번 이야기를 시작해 볼까 합니다.

 


 

 

Lady Godiva by John Collier

 

💌 레이디 고다이바의 이야기

위 그림은 존 콜리어가 그린 ‘레이디 고다이바’입니다.

아름다운 여인이 나체로 말을 타고 길을 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도 주변에는 사람들이 없습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고다이바 부인은 11세기 영국 런던 근교의 코번트리 영주 레오프릭 백작의 부인이었습니다.

그녀는 백성들이 어렵게 살아가는 이유가 그들에게 부과된 과중한 세금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남편인 레오프릭 백작에게 백성들의 세금을 감면해 달라고 간청합니다.

레오프릭 백작은 아내의 말을 거절하고 싶었지만, 단호하게 거절하기보다 감당하기 힘든 조건을 내세우며 세금 감면을 약속했습니다. 바로 대낮에 알몸으로 말을 타고 거리를 한 바퀴 돌면 들어주겠다는 것이지요.

그녀는 감당하기 힘든 조건임에도 백성들을 위해 자신의 모욕쯤은 감내하기로 합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고다이바는 알몸으로 말 위에 올라타 거리로 나섭니다.

이에 백성들은 자신들을 위해 희생하는 고다이바를 위해 모든 문과 창문을 걸어 잠그고 커튼을 친 다음 누구도 내다보지 않았습니다. 이에 감동한 레오프릭 백작은 세금을 과감히 줄입니다.

 

 


 

💌 “대표 없는 곳에는 세금 없다.”

 
마그나카르타에 서명하는 영국 존 왕의 모습

 

마그나카르타(대헌장)는 많이 들어 보셨을 겁니다.

13세기 영국의 존 왕과 귀족들의 싸움에서 존 왕이 져서 서명하게 된 일종의 ‘각서’입니다.

마그나카르타 서명이 일어난 계기는 계속된 전쟁으로 인해 세금이 과도하게 부과되자 영국의 귀족들이 반발하며 일어난 것입니다. 귀족들은 존 왕과 사생결단하려고 런던으로 쳐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존 왕을 폐위한 뒤, 내세우려고 했던 왕족이 죽게 되면서 적당히 합의하는 차원에서 내세웠던 것이 마그나카르타였죠.

마그나카르타에는 국왕이 마음대로 과세할 수 없다고 제한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대표 없는 곳에 세금 없다’입니다. 이는 미국 독립 전쟁의 구호가 되기도 하죠.

그리고 봉건적 권리와 사법 분야에서의 왕의 권위에 대해 문서를 통해 처음으로 제한을 가했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본질적으로 왕은 법 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법 테두리 안에서 통치를 해야 한다는 원칙을 수립한 것이죠.


 

미국의 독립 전쟁

프랑스 혁명 전쟁

 

💌 미국 독립전쟁과 프랑스 혁명

미국 독립전쟁(1776)과 프랑스 혁명(1789)의 공통점은 과중한 세금과 이에 따른 조세저항입니다.

미국 독립전쟁은 영국이 1763년 제정한 설탕법과 1765년에 제정한 인지세법 때문에 일어납니다. 영국은 당시 7년 전쟁으로 재정적자가 심했습니다. 내부에서 세금을 거둘 수가 없어 여러 가지 세법을 신설해 식민지에 세금을 물린 것이죠.

설탕에 관세를 부과하고, 모든 공문서에 인지를 붙이게 인지세를 걷었습니다.

없던 세금이 늘어나자 식민지인들의 불만이 폭발했습니다. 이에 영국은 인지세법을 폐지하고 타운센드법을 제정해 식민지에서 수입하는 차(茶), 유리, 종이, 납, 페인트 등 모든 품목에 관세를 부과합니다.

이에 미국에서는 인디언으로 분장한 식민지인들이 보스턴에 입항한 영국의 차 운반선을 습격해 홍차 342상자를 바다에 던져버리죠. 이것이 미국 독립전쟁의 원인이 된 ‘보스턴차사건’입니다.

이를 계기로 미국 내 식민지 의회들이 합심해 영국과 독립전쟁을 벌입니다. 이들의 구호는 마그나카르타에 명시된 “대표 없는 곳에 세금 없다”였습니다.

프랑스 혁명도 시작은 세금이었습니다. 프랑스 혁명 이전의 체제는 세금 제도가 극도로 복잡했고, 시민들만 부담을 져야 했습니다. 그중에서 ‘가벨’이라는 소금세는 악명이 높았죠.

서민에게 꼭 필요한 소금이었지만, 과도한 세금으로 서민은 소금을 쓸 엄두조차 내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소금 가격이 프랑스 혁명 직전에는 천정부지로 뛰어오릅니다. 소금세에 대한 생산 농민들의 항의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프랑스 정부는 봉기 주동자나 소금 밀수업자를 붙잡아 가혹하게 처벌하기만 했죠.

이와 달리 귀족과 성직자들은 다양한 면세 혜택으로 세금을 거의 내지 않았습니다. 이런 불만이 폭발해 1789년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하면서 프랑스 혁명이 시작되었습니다.


💌 위스키 세금

미국 연방정부에 첫 시련을 안긴 위스키 반란(1791~1794)의 상상도(R.M. Devens 1882)

 

미국은 독립전쟁 후 많은 부채를 안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 재무부 장관이었던 알렉산더 해밀턴은 위스키 제조업자들에게 세금을 부여할 것을 제안합니다.

 

위스키는 당시 인기가 좋은 주류였기 때문에 세금을 통해 많은 수입을 올릴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과음을 줄일 수 있어 많은 사람에게 좋으리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세금을 부과하는 방식이 불공정하다고 많은 사람은 느꼈습니다.

대규모 주조업자들은 세금을 낼 수 있었지만, 소규모 업자들은 세금을 낼 수조차 없었죠. 위스키가 워낙 인기가 높다 보니 꽤 많은 농부가 부업으로 만들었기에 이들은 위스키 제조업자들에게 부과되는 세금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펜실베니아 서부 지역에서는 현금을 구하기 어려워 위스키가 거래 수단으로 많이 사용되었지요. 위스키 제조에 부과되는 세금으로 인해 지역 거래 수단이었던 위스키마저 제한되는 상황이 되어버립니다.

이는 대대적인 폭동으로 이어지죠.

이런 위스키 반란은 토머스 제퍼슨의 공화당으로 정권이 교체되는 계기가 됩니다. 그리고 제퍼슨 취임 1년 뒤인 1802년 위스키 세금은 폐지됩니다.


 

 

💌비틀스의 '텍스맨'

비틀즈 - 리볼버

비틀스 노래 중에 ‘택스맨(taxman)’이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조지 해리슨이 작곡을 했습니다. 이 노래는 바로 영국의 고세율 정책에 대해 노래한 것인데요. 비틀즈는 일찌감치 해외로 도망치는 방법을 몰라서 최고 90%에 달하는 소득세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택스맨 노래 가사 맨 처음 부분에 그 내용이 들어가 있죠.

“Let me tell you how it will be. There's one for you, nineteen for me”

비틀스(you)의 몫은 1/20, 택스맨(me)이 19/20를 가져가는 것이죠. 택스맨은 세금을 뜯어가는 징수원 즉, 국가를 얘기합니다. 그리고 무엇을 하든 세금을 걷는다고 노래합니다.

이런 노래를 만든 비틀스는 절세(節稅)를 위해 애플(스티브 잡스의 애플과는 다릅니다.)이라는 회사를 만들었습니다. 음악으로 번 돈을 세금으로 쓰기보다 다양한 신사업에 투자하면서 세금을 감면 받으려고요.

하지만 비틀스는 망합니다. 비틀스의 돈을 노리고 달려든 인간들에게 이리저리 사기당했기 때문이죠. 신사업이라는 명목으로…😱

결국 애플의 경영을 둘러싸고 폴 매카트니와 존 레넌 간에 갈등이 벌어졌고, 이는 비틀스 해체의 원인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세금은 우리가 문명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내는 비용이다”-올리버 웬델 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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