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이 상당히 불우했던 편이었다. 그가 태어나기 몇 달 전, 6.25 전쟁에서 종군사진작가로 활동하던 친아버지가 1.4 후퇴 중 사망하는 바람에 경기도 수원군에서 피난 중 유복자로 태어나 홀어머니 슬하에서 이부 누나와 함께 자랐다.
마광수의 친부 마씨는 어머니의 두 번째 남편이고, 첫 번째 남편 조씨 사이에 딸(마광수에게는 이부 누나) 하나를 얻었다.
대광고등학교와 연세대학교 문과대학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1974년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국어국문학 석사, 1983년 국어국문학 박사 학위를 각각 취득했다.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수석으로 입학해 4년 전액 장학금을 받고 다녔으며, 학부과정을 전과목 A로 졸업했다. 연세대학교 졸업 후 청록파 시인 박두진의 추천으로 26세에 등단했으며, 홍익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교수(당시 28세)를 거쳐 1983년부터 연세대학교 문과대학 인문학부 국어국문학과 교수(당시 32세)로 재직하다 2016년 8월 정년 퇴임했다.
또한 1977년 현대문학에 시로 등단한 시인이다. 1985년 장편소설 <권태>로 소설가로서의 첫 발을 내딛었다. 이후 <즐거운 사라>, <자궁 속으로>, <귀족>, <불안>, <발랄한 라라>, <사랑의 학교> 등의 소설집과, <가자 장미여관으로>, <야하디 얄라숑>, 육필시집 <나는 찢어진 것을 보면 흥분한다> 등의 시집,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등의 수필집을 집필하였다.
1989년 시집 <가자 장미여관으로>를 영화화하려고 했고, 감독으로도 결정되었으나, 제작사는 중간에 감독을 교체하고, 마 교수는 여기에 비난 기자회견을 한 바 있다. 일설에 의하면 마광수의 연기 지도가 너무 야해서 당시 검열을 통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교체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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