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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중국/일본 라면의 역사

by 채소아빠 2023. 3. 6.

중국의 라몐(수타면)

본래 '拉麵'(라몐)이라는 단어는 손으로 길게 잡아당겨 늘여서(拉) 밀가루 국수(麵)를 만들었다는 뜻이다. 즉 한국어로 수타면(手打麵)이라고 할 수 있다. 이 표현은 요리 '재료'인 국수 가락 종류 중 하나로 국물과는 무관하다. 이런 식으로 만든 면을 장이나 양념에 비벼 먹으면 반면(拌麵), 국물에 말아먹으면 탕면(湯麵)인 식이다.

후술 할 일본 라멘은 탕면 계열의 수타면에서 왔다.

일본의 라멘과 간편화

탕면 계열의 수타면은 중국에서 일본으로 유입되어 라멘이 되면서 국물을 더 중시하게 되었고, 그 반대로 면은 수타로 만들지 않게 되었다. 인스턴트가 아닌 라멘의 역사는 라멘 문서로.

최초의 인스턴트라멘

1958년, 일본의 기업인 닛신식품은 면을 기름에 튀겨 건조하는 방법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닭뼈 육수 맛을 낸 '치킨라멘(チキンラㅡメン)'을 출시했다. 세계 최초의 인스턴트 라멘이었다. 단, 이 치킨라멘은 아지즈케(味付け) 방식으로 미리 면을 국물에 절여두는 방식으로 만든다. 이 닛신 치킨라멘은 2020년 현재에도 거의 본래 모습 그대로 판매되고 있어 간혹 가다 먹는 별미로서 찾고 있다고.

닛신식품의 창업주였던 안도 모모후쿠는 당시 탈세 혐의에 회사가 부도가 나서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이를 계기로 다시 부를 거머쥐었고 인스턴트 라멘 덕에 인생이 핀 덕분인지 "물고기를 원한다면 낚시하는 법을 가르쳐 주면 된다. 하지만 라멘은 아무것도 가르칠 필요가 없다."라는 말을 했으며 2007년 1월 5일 96세로 사망하는 날까지 매일 인스턴트 라멘을 먹었다고 한다.

면을 튀겨서 건조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장점은 부피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건조된 라면은 부피를 적게 차지하기 때문에 작은 봉지 안에 넣기 용이하다. 인스턴트 라멘의 수프와 건더기가 다양해졌지만 면 모양은 여전히 꼬불꼬불한 것도 포장 크기 때문이다.

애초에 튀김과 동일한 방식으로 제조되다 보니, 굳이 요리를 하지 않고 그냥 먹어도 된다. 그 자체가 이미 밀가루 튀김이다.

세계 최초의 컵라면 컵누들

컵라면 역시 일본에서 먼저 개발되었다. 마찬가지로 1971년 닛신에서 미국의 인스턴트 라멘 소비자들이 컵에 라멘을 부수어 넣고 포크로 라면을 먹는 것을 보고 컵라면의 아이디어를 떠올렸고, 세계 최초의 컵라면인 컵누들을 출시했다. 덕분에 북미 시장에서 인스턴트 라멘의 인기가 더욱 높아졌다.

한국에서 일본의 인스턴트 라멘은 그냥 라면 내지 일본 라면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한국의 라면

한국에서는 인스턴트식품으로 만든 일본 라멘에서 영향을 받아 처음부터 인스턴트 식품으로 출시했다.


1963년 9월 15일에 삼양라면을 원조로 하여 인스턴트 라면이 처음으로 출시되었다. 1950년대 말 보험 회사를 운영했던 전중윤 삼양식품 회장은 일본에서 경영 연수를 했을 적에 접했던 인스턴트 라면이 당시 경제가 어려워 먹을 것이 없는 한국 사정에 맞을 것 같아 들여왔다. 하지만 당시 출시했던 제품은 맛이 한국인의 입맛에 그다지 잘 맞지 않아 별 인기가 없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삼양이 출시한 라면은 일본의 묘조(明星-명성) 식품의 제조법을 그대로 가져온 일본식 치킨라면이었고. 이 때문에 닭고기 국물을 재현한 수프라서 느끼한 맛이 났다고 한다.

그러나 여기서 포기할 수 없었던 삼양식품은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제품을 만들기 위해 회사 내에 수프 관련 실험실을 설치하는 한편 종로 거리에서 공개 시식회를 하는 등 화제를 모았고, 청와대까지 가서 당시 대통령이었던 박정희에게 라면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때 라면을 처음 먹은 박정희는 "우리 한국인들은 맵고 짭짤한 맛을 좋아하니 고춧가루가 좀 더 들어갔으면 좋겠다."는 말을 남겼다고. 그리하여 한국의 라면은 기본적으로 매운맛을 가미하게 되었다.

1960년대 삼양라면의 원조 격인 묘조라멘의 신문 광고


당시 가격은 10원. 김치찌개백반이 30원, 짜장면이 20원이었던 시절이니 굳이 지금 물가로 치면 2~3천 원꼴로, 대다수가 빈곤층이었던 당시에는 상당히 고가의 먹거리였다. 더군다나 가난한 사람이 많았기 때문에 라면의 대중화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60년대 유년기를 보낸 사람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 라면은 콜라처럼 손님이 와야 대접하는 음식이었다고 하니 초반에는 그렇게 수요가 크진 않았다. 검정고무신에서도 이점을 충실히 반영하여, 라면이 서민들에게 고급(?) 음식이라는 점이 잘 드러난다. 열악했던 60년대에는 라면이 짜장면과 맞먹는 상당한 고급 음식이었으며, 부잣집 사람들이 아닌 이상은 특별한 날에만 겨우 맛볼 수 있는 귀한 음식이라는 인식이었다. 70년대 말까지는 도시에도 국수 공장이 있는 동네가 많았고, 국수가 라면보다 훨씬 저렴했다.


그러나 점차 수요가 커지면서 1960년대 중후반 들어서 수많은 회사들이 라면을 만들기 시작했다가, 1970년대가 다가올 무렵에 삼양과 롯데(농심)만이 살아남았다. 1968년엔 동명식품이 풍년라-면을 내놓았는데, 디자인이 압권이다. 광고 자료를 보자.


삼양이 받은 국가 차원의 지원은 한국 라면의 상징이 되었다. 당시에는 국가적으로 미국에서 수입된 밀가루를 소비하기 위해 혼분식을 장려했었기 때문이다. 이후 쇠고기 육수 맛을 베이스로 해서 한식의 전반적인 경향에 따라 매운맛을 조금씩 넣다가, 특히 농심그룹의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 라면인 '신라면'이 나온 1986년 이후로는 매운 라면이 특히 더 인기를 끌었다.

 

 

라면 제조사/브랜드/업체별 제품 목록

국내 온라인 종합 쇼핑몰에서 가장 많이 팔린 라면 브랜드는 농심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어서 오뚝이, 삼양 순으로 한국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았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 1,2월 국내 10개 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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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라면과 일본의 라멘의 차이

한국에서 라면이란 '즉석식품화된 유탕면'을 뜻하고, 일본식의 생라멘은 '라멘'으로 불러 서로 아예 다른 음식 종류로 구분하고 있다. 라멘풍 라면도 간혹 있지만 한국인이 생각하는 '라면'은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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