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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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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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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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5년 (영조 2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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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군
(현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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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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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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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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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능(士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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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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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檀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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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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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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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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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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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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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화가, 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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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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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 (성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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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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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김석무
어머니 문필주 아들 김양기 |
김홍도(金弘道, 1745년 ~ 1806년?)는 조선 후기의 풍속 화가이다.
본관은 김해, 자는 사능(士能), 호는 단원(檀園)·단구(丹邱)·서호(西湖)·고면거사(高眠居士)·취화사(醉畵士)·첩 취옹(輒醉翁)이다.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는 그의 호 단원을 따온 이름이다.
정조 시대 때 문예부흥기의 대표적인 화가로 여겨진다. 그는 산수화, 풍속화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화가였지만 고사인물화 및 신선도, 화조화, 불화 등 모든 분야에서 독창적인 회화를 구축한 화가이기도 하다.
주로 어명·고관의 명, 양반의 청탁을 받아 그림을 그렸지만, 일반 서민들의 일상생활을 그린 풍속화가로 우리에게 주목받고 있다. 또한 그는 그림만 그린 것은 아니고, 시도 써서 아들 김양기가 출판한 《단원유묵》이라는 문집도 있다.
확실한 출생 등은 알려진 바가 없다
강세황은 김홍도의 재능을 이렇게 칭찬하였다.
“ 단원은 어릴 적부터 그림을 공부하여 못 하는 것이 없었다. 인물, 산수, 신선, 불화, 꽃과 과일, 새와 벌레, 물고기와 게 등에 이르기까지 모두 묘품(妙品)에 해당되어 옛사람과 비교할지라도 그와 대항할 사람이 거의 없었다. 특히 신선과 화조를 잘하여 그것만 가지고도 한 세대를 울리며 후대에까지 전하기에 충분했다. 또 우리나라 인물과 풍속을 잘 그려내어 공부하는 선비, 시장에 가는 장사꾼, 나그네, 규방, 농부, 누에 치는 여자, 이중으로 된 가옥, 겹으로 난 문, 거친 산, 들의 나무 등에 이르기까지 그 형태를 꼭 닮게 그려서 모양이 틀리는 것이 없으니 옛적에는 이런 솜씨는 없었다. 그림 그리는 사람은 대체로 천과 종이에 그려진 것을 보고 배우고 익혀서 공력을 쌓아야 비로소 비슷하게 할 수 있는데, 단원은 독창적으로 스스로 알아내어 교묘하게 자연의 조화를 빼앗을 수 있는 데까지 이르렀으니, 이는 천부적인 소질이 보통 사람보다 훨씬 뛰어나지 않고서는 될 수 없는 일이다."
김홍도는 영조 말년에 세손(정조)의 초상화를 제작한 것을 계기로, 자신의 재능을 알아본 정조로부터 많은 배려와 관심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김홍도와 정조와의 관계는 조희룡의 《호산외사》 속에 "정조 때에는 화원의 공봉(供奉)으로 관내에서 그림을 그려 올릴 때마다 매번 칭찬을 받고 곧 왕지(王旨)에 맞았다." 또는 "임금께서 금강산 사군(四郡)의 산수를 김홍도에게 그리라고 명하고 관용으로 조석(朝夕)을 받들게 하니, 이는 이수(異數)의 대접이었다."라는 기록을 통해 짐작해 볼 수 있다. 또한 정조는 자신의 문집인 《홍재전서》에서 김홍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었다. “ 김홍도는 그림에 솜씨 있는 자로서 그 이름을 안 지가 오래다. 삼십 년쯤 전에 나의 초상을 그렸는데, 이로부터 무릇 그림에 관한 일은 모두 홍도를 시켜 주관케 하였다. ”
정조의 어제문집, 《홍재전서》, 〈삼가 주자 선생의 시에 화운함〉, 시의 말미에 첨부된 협주(夾註)
구룡연
진주담
만물초
묘길상
호해정
계조굴
명경대
죽서루
청심대
총석정
환선정
마하연
능파대
낙산사
망양정
백화암부도
은선대십이폭
비봉폭포
오대산사고
시중대
월정사
장안사
표훈사
삼불암
이 모든 그림은 그 자리에서 그린게 아니라 다녀와서 그렸다는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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